Sunday, April 21, 2013

써퀴 뒤 쏠레이(cirque du solei), 태양의 서커스_Totem



예전 아주 어린시절 그것도 서울 한복판 동네시장에 동춘 서커스가 온적이  있었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언니 오빠는 아예 흥미가 없었던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예전의 서커스의 향수를 가지고 계시던 할머니가 선듯 공연을 보여주신다는 얘기에 할머니 손을 붙들고 갔었던것 같다. 늙은 원숭이가 있었고, 어린 소녀가 하늘을 향해 누워 발로 나무통을 돌렸던 기억. 그리고 삐쩍마른 광대가 나와 뭔가 바보짓을 하며 웃겼던 서커스. 지금 내가 기억하는 동춘 서커스의 기억은 너무나 어린시절이라 아마도 다른 영화나, 소설의 얘기와 나의 상상과 마구 섞여서 제대로 기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어린아이 눈으로도 서커스가 재미나다기 보다는 왠지 안쓰러워 보였던 생각이 난다. 언니또래의 소녀가 통굴리기를 하고 키다리 아저씨가 봉돌리기를 하고 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기 보다는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다들 어떻게  살지,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하면 학교는 안가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었던가 보다. 후론 어디서도 동춘서커스이야기나 공연을 적이 없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 다시 서커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써퀴 뒤 쏠레이, 태양의 서커스 (cirque du solei). 캐니다 퀘백에서 1984년에 만들어진 서커스팀으로 서커스를 예술로 승화시킨 공연이다. 그러나, 서커스공연이라 말하기보다는 인간 기예를 하나의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한 예술공연이라 이야기 하고 싶다.


처음 써퀴 뒤 쏠레이 (cirque du solei) 공연을 본건 라스베가스에 놀러갔었을때, Mystere 라는 공연으로 처음 접하였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구조, 환상적인 무대, 분장과 의상은 하나하나가 하나의 감동을 이었고, 왠지 어두운 기가 흐르고 있는 듯란 인공의 라스베가스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 나로써는 이런 공연들만 보러도 라스베가스에 다시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공연의 주제
이번에 뉴욕에 방문한 써퀴 뒤 쏠레이(cirque de solei), 토템 (TOTEM)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신성시 되는 영적 동물로 표현되는 상징물인 거북이, 그 거북이의 등껍질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이로부터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양서류에서부터 뭍으로 나오기 시작한 지구의 생명체의 발달, 유인원에서부터 직립원인, 호모 사피엔스에까지 이르는 인류의 진화, 고대 아메리카 인디언의 주술적 이야기,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문화와 과학적 발명등의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서커스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인간의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움직임과 표현, ‘두그두그’ 북소리에 준비되어지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에 따른 흥미 진진함과 그리고 조마조마한 기대감과, 그리고 묘기가 완성되었을때에 따른 탄성과 절로 나오는 박수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매 곡예마다 계속적인 긴장감과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서커스 공연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무대
한정된 크기의 무대공간 안에 여러 다른 장면을 연출하기위해서는 변화 무쌍한 변신이 필요하다. 토템에서는 바닥의 일부가 변신 로보트처럼 들어올렸다 내려가며 움직이는 무대가 설치되어, 이는 뱃머리가 되기도하고 다리가 되기도 한다. 이 무대는 영국의 상하이 엑스포 영국 파빌리온을 디자인한 heatherwick의 Rolling bridge를 연상시킨다. 




Rolling bridge, Heatherwick
또한 경사진 무대의 바닥은 거대한 스크린이되어 다양한 이미지를 투영시키며 배우의 움직임과 함께 움직인다. 또한 무대는 바닥에 한정되지 않고 천정에까지 이르러 공중 그네와 같은 곡예가 펼쳐진다.
스피커 시스템에 있어서도 360 도 멀티채널 서라운드 사스템으로 소리조차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 원형의 공연장 안을 소리를 쫓아 두리번 거리게 만들었다.


의상과 분장
또 하나의 볼거리, 아니 이 공연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 중에 커다란 역활을 하는 것이 의상과 분장이라 생각된다. 이는 배우들을 하나의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인간의 동물화, 때로는 새로운 성격의 인물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물론 연기과 움직임에따라 연기하는 대상의 특징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토템의 공연에서는 이를 제외하고라도 의상과 분장만으로도 하나의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해 낸듯 싶었다.
이들 디자이너들의 작업과정을 보면, 작업의 영감을 찾기위해 지구의 인류 문명이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지역이나 용암지대와 같은 곳을 찾아가고, 동물과 곤충들을 연구하여 자연에 적응하는 그들의 몸의 패턴이나 자연의 현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조명
공연의 시작과 엔딩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인간 디스코볼이 객석과 무대공간을 반짝이는 빛을 흩뿌리며 시작되었다가 끝이 나다.
어 두운 공간에서 형광물질과 이에 반응하는 라이팅은  신비스러운 무대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엘이디 라이팅의 화려한 빛의 변화는 공던지기라는 자칫 지루해 질수 있는 곡예를  새롭게 변화시켰다. 따라서 조명은 토템의 공연을 무한한 상상력과 재미난 위트로 이끄는 커다란 역활을 하였다.


한때 연극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서 일까, 아니면 공간을 디자인을 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 디자인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많은 자극을 받는다. 문학에서 시, 단편, 장편 소설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듯이 무대 디자인은 시적인 공간과 같아서 일상생활에서 실용적이거나 장기 사용되는 공간은 아니지만, 함축된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감동을 준다고 생각한다. 다만 종합 예술로써 무대 디자인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주제, 배우, 조명, 분장과 의상, 모든 것이 잘 조화를 이루어 내어 훌륭한 공연을 만들어낸 것 이리라.

일상의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일반인이 배우가 되는 현실적인 삶의 공연장을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는 공연의 무대보다 더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고 종합되서 이루어지는 것이겠다. 삶의 무대가 되는 실제적인 공간, 주변 상황과 자연환경, 각기 다른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공간의 목적들, 흐르는 시간을 담고, 조명 뿐만아니라 계절에 따라, 밤낮으로 시시 각각 변하는 햇살을 담아야 하는, 내부 음향뿐만 아니라 외부의 소리,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소리와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위들이 고려되고, 나아가 단지 보는 것이 아닌, 직접 만지고 느끼는 공간이 되겠다. 나는 이런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복한 공연들을 해서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내가 호텔, 레스토랑과 같은 hospitality 공간 디자인 작업을 좋아하는 것일 게다. 사람들이 행복한 시간, 좋은 경험들, 추억과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그들의 공연장을 디자인 하는 것.


시를 읽듯이 토템과 같은 공연을 보는 것으로, 공간디자인을 하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자칫 프로젝트를 접할때 공간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생각들이 너무 기능적으로 되거나, 생각하는 방식이 고착화 되는 것을 깨어주어서 좋다.
서커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란 텐트, 작은 전구들과 펄럭이는 깃발들,  웃음을 자아내는 어릿광대. 퇴근후 공연시간을 맞추기 위해 한참을 뛰고,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야 하는 긴 여정있었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신비한 이야기들, 그리고 상상력과 위트의 세계로부터 에너지를 흠뻑 받을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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